경기도 이천에 1만 평 대지 안에 집만 22채를 가진 부자의 스토리를 보셨나요? 자신의 집에서 카트로 이동하며 점심과 저녁 식사를 다른 건물로 이동해서 하는 부자죠. 재벌 2세나 3세의 이야기가 아니구요. 우리나라 1세대 남성 헤어디자이너 이상일님의 이야기입니다.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방송 소개
EBS 교육방송에서는 부와 성공을 이룬 우리나라 12명의 '숨은 진짜 부자'를 찾아내고 그들의 성공 비결을 소개하는 "이웃집 백만장자"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요.
서장훈이 메인MC로 조나단, 장예원 등이 보조MC로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EBS에서 방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인기를 끌었답니다.
방송의 시작은 진행자 서장훈이 빌딩 옥상 난간에 서서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 행복해지는 것인가? 돈? 명예? 사랑? 자유?”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합니다.
PD가 서장훈에게 “부자라서 좋은 점이 뭔가요?”라고 묻자,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지 않아도 된다”라고 대답합니다. 정말 간결하면서도 부러운 대답이네요.
이어서 서장훈은 “작은 성공이든 큰 성공이든 성공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틀림없이 이유가 있어요 돈을 떠나서 우리가 분명히 배울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역시 너무 공감이 가는 멘트입니다.
진행자 서장훈은 이 12명의 진정한 부자들에게 항상 마지막 부분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고 계십니까?"라는 공통질문을 던지는데요. 서장훈 본인 역시 잘 알려진 부자인만큼 그가 던지는 질문이 꽤나 심플하면서도 울림이 큰 것 같아요.
우리가 그들과 같은 부자가 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성공과 부에 이르는 과정을 들어보면서 삶의 자세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면 이 방송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해요.
이제 1세대 헤어디자이너 이상일님이 수 많은 재벌들과 부자들을 제치고 왜 1화 방송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는지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구요.
왜 이상일님이 "이웃집 백만장자" 1화 주인공일까?
EBS 방송 "이웃집 백만장자" 1화의 주인공인 이상일님은 **미장원, @@미용실로 불리던 곳을 '헤어샵'으로, 미용업계 종사자들을 '헤어 디자이너'로 네이밍을 바꾸게 한 우리나라 최초의 분이랍니다.
1980년대에는 故신성일, 장미희, 김완선 등 당대 최고 톱스타들의 헤어 아티스트로 활약했으며 2000년대까지 슈퍼주니어나 동방신기까지 고객으로 둔 탑클래스 헤어 디자이너라 해요. 故앙드레김 패션쇼의 상징인 '양머리 스타일'의 창시라로도 잘 알려진 분이죠.
그는 헤어디자이너로서 일하던 초기부터 의사처럼 고객 모발에 대한 차트를 만들어 관리했다고 해요. 그리고 그 고객의 모발을 더 잘 관리해 주기 위해서 그들의 머리카락을 모으기 시작했답니다.
그는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 준 건 고객이 있어서라는 생각으로 그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기 위해 고객의 머리카락을 고급 캡슐에 담아 메인 건물(22채나 되어도 그 중 유럽의 성곽같은 메인 건물이 있더군요)의 입구 거실에 갤러리를 만들어 보관하고 있답니다.
4,200원 잡지 번역료로 출발한 프랑스 파리 유학
그는 충청도 골짜기 시골 마을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는데요. 그 때 기차역까지 따라온 어머니가 건네주신 삶은 계란을 먹으며 용산역까지 온 추억으로 인해 삶은 계란을 자신의 소울푸드라고 소개합니다.
이상일님은 힘든 서울 생활 중 명동 거리에서 우연히 패션잡지 한 권을 사보게 되었는데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번역까지 맡기며 이를 읽었답니다. 이 번역본에서 “프랑스 파리에는 남자 미용사가 있다”는 글을 보고 엄청나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그리고 그는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고 파리로 떠납니다. 언어조차 통하지 않을 파리에서의 생할은 순탄할 일이 없었겠죠. 무작정 헤어샵 취업에 도전했더니 사장이 미용학원부터 다니라 충고했고 그의 조언대로 미용 아카데미를 수료합니다.
같은 미용 아카데미를 다니던 한국 여성에서 200불을 빌린 후 갚는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며 시작된 그의 연애는 결혼으로 이어지고 프랑스 생활을 접고 귀국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미용업계를 뒤집어 엎다
그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7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대부분 꽃님이미용실, 별님이미장원이 대부분이던 시절이었는데요. 그는 택시를 타고 남산터널을 지나가다 라디오 방송에서 "뉴스"를 듣고는 너무도 터무니 없어 보이게도 자신의 명동 미용실의 이름을 “헤어뉴스”라고 네이밍합니다.
이때부터 미용실과 미장원들이 너도나도 “헤어샵”, “헤어살롱”으로, 미용사는 “헤어디자이너”라는 이름으호 바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시기적으로도 1세대 헤어 디자이너가 맞고 그것도 당시 볼 수 없던 남성 헤어디자이너였지만, 더욱 의미가 큰 건 이렇게 미용업계의 판도를 뒤집어 엎은 것이 아닐까요.
이상일님은 이름의 고급화 선언을 넘어 헤어뉴스의 미용기구나 의자를 최고급으로 바꾸고 심지어 찻잔도 최고급을 사용하고 매일 신선한 생화를 바꿔 인테리어를 하기 시작합니다. "부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라는 그의 고급화 전략은 대박을 치게 됩니다.
당시 보통 미용실 미용료가 2,000원~3,000원이던 시절인데 헤어뉴스의 미용료는 15,000원~30,000원까지 올렸음에도 고객들이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매일 퇴근 후에는 한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아가며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다니 이게 그의 성공 비결인가 보네요.
재산 상속 포기하고 사회에 환원 약속
이상일님은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묻자 “나는 계란 한 줄로 일어났는데. 왜 그걸 자식들에게 물려줘요? 물질을. 지금까지 가르치고 키워줬는데. 물질 물려주면 정신 망가져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이 장면은 방송에서 가장 높은 분당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미용업과는 전혀 상관 없는 저의 입장에서는 미용업 1세대답게 우리나라 미용업의 발전을 위한 재단 설립 등으로 쓰이면 좋겠다는 혼자만의 생각도 해봤네요^^
헤어디자이너 이상일님의 성공비결
서장훈이 그에게 성공비결을 묻자, "2편에서 말씀드리면 안될까"라는 너스레를 잠시 떨고는 "나는 돈을 벌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감정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고객을 가장 아름답게 해 드릴까? 그 생각에만 집중했다"라고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성공과 물질은 나의 그림자에서 쫓아온다. 괴로움도 외로움도 한때면 지나간다. 인내심을 가지면 된다"는 그의 말은 많은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들과 같은 대답일까요. 그냥 묵묵히 내가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했고 돈을 쫓지는 않았다라는.
EBS채널, TVING(유료), 유튜브 등에서 "이웃집 백만장자 1화 이상일편"을 볼 수 있습니다. 위를 클릭하시면 이웃집 백만장자 영상으로 이동해서 이상일 헤어디자이너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EBS가 참 좋은 방송을 편성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몇백억, 몇천억의 부자들은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성공했다고 보거나 존경 받을 수 있지는 않을 겁니다.
"진정한 부", "부의 가치", "부의 이면에 숨은 부자들의 마음가짐"을 탐구해 가는 이 방송에 감동과 인사이트를 얻어 그와 그가 나온 방송을 소개해 보는 포스팅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1편 이상일님 편은 우연히 보았지만 2편 이후는 찾아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고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전해 드려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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